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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냥 다 내던지고 자고 일어나니 런던시각으로 아침 5시 반. 그나마 숙제는 하는 시늉이라도 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봐야하는걸까. 한 것도 없는데 한주가 휙휙 가 버렸다. 이제 아침먹고 씻고 다시금 학교로 가야하는 게지. 나 요즘 왜이럴까? 오후 클래스를 작문기법으로 옮겼는데 수업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특히 어제 임시 선생으로 온 간달프 같은 인간이 가르치는 것은 형편이 없더라. 애들 중 반수 이상이 정신 못차림. 그 와중에 나는 대 놓고 선생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말만 씨불랑 거리지 말고 칠판에다가 좀 쳐 적으라고 말해버렸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큰일이다. 그런데 짜증도 쉽게 나서 누가 정신차려라라고 잔소리를 하면 그냥 콧등에 주먹을 날릴 것 같다. 일단 내가 마음을 너무 급하게 먹은 것 같다. 마치 내 꼴이 우리 학교에 삼수하고도 떨어진 친구와 같은 듯. 제발 마음을 편하게 먹자. 여기에 와서 1년간 공부를 하고도 영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는가. 그렇다. 모든 것은 운명대로. 마음을 편하게 먹자. 정장을 입고 싶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옷을 좀 사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복싱데이까지 기다려 조금만 기다리면 돼 쨔사. 그래서 참고 있다. 어제는 비니를 샀다. 말라 붙은 피 색깔이다. 코트랑 정장바지를 사고 싶다. 옆으로 매는 가방도 하나 사고 싶다. 금요일에는 오후에 뉴몰든으로 가서 시장을 볼 생각이다. 라면이랑 김치랑 이것 저것을 사야 할 것 같다. 이제 11월도 끝이다. 11월은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열심히 논 것도 아니다. 반이 바뀐 것이 크긴 하지만, 이것 저것 쓸모 없는 것에 심신을 너무 많이 소모시켰다. 그렇다. 쓸모 없는 것에 너무 많이 심신을 소모 시켜 버렸다. 카네기 인간관계론과 행복론을 다시금 찾아 읽어야 겠다. ![]() 올해 여름의 일이다. 부산에 관광을 온 친구를 사상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고 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허무함과 공허함에 사로잡혔다. 다시금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왠지 눈물이 날만큼 가슴이 아팠다. 학교 근처의 자취방에서 홀로 2년간 살아가면서 나는 이따금 그 친구로부터 외로움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애인이 배신하였을 때, 다시금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그 친구는 질투 섞인 부러움과 진심 어린 조언. 그리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친구는 나의 출국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나를 보려고 온 것이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그 친구와 만남을 가지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지하철을 타면서 내 자리의 맞은편에 20살을 살짝 넘겼을 아가씨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전 애인들을 생각했다. 내가 이별을 고했던. 그리고 이별을 통보하던 아가씨들. 왜일까? 이제껏 후회라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던 나는 내가 조금 더 잘할걸. 내가 조금 더 이해할 걸이라는 자책감에 빠져들었다. 나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했지만, 사실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그런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이해 가지 않아도 믿고 곁에 있어주어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이 그리워졌다.
몇몇 여성들은 아마도 이런 나의 말에 더럽다거나, 혹은 변태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한 여성을 보았으며 그리고 전 애인들을 떠올렸고, 전 애인들과 가졌던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고백하는 나. 나는 들고 있던 카메라로 나도 모르게 그 아가씨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 아가씨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누군지 알 수 없이 보였고, 여성의 실루엣이 담긴 이미지를 보면서 나의 가치관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제껏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깊은 육체적인 관계를 맺곤 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어떤 것을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남자들이 으레 가곤 하는 홍등가가 어떤 곳인지 얼마를 받는지 어떤 사람이 오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20살 이후로 아리따운 여성들이 내 옆에 있어주곤 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연인들 사이가 으레 그러하듯. 내가 가진 성욕을 풀어주곤 했다. 대단히 고맙고 기뻤으며 나 역시도 그녀들을 기쁘게 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람과 내가 서로를 아끼는 것을 확인하고, 또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을 받는 것이 좋았고, 흥분하곤 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가만가만히 나를 진정시켜주는 것이 좋았다.
전 애인과의 마지막 섹스는 봄에 일어났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혼자였었다.
남자가 성욕이 쌓이고 쌓이면 남자는 자연스럽게 몽정을 하게 된다. 최소한 이제껏 나는 그래 왔다. 몽정은 참 어처구니없게도 서글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이성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자제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꾸준히 운동을 하여 건강을 관리해 왔다. 대체로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고 말하는데 아마도 나는 무척이나 건강한 남성일 것이다. 몸이 건강하기에 보통의 남자가 그렇듯이 내게도 성욕은 있다. 그리고 그 성욕을 외면하면 슬프게도 몽정으로 나는 사정하게 된다.
몽정이 어때서라고 물어보는 여성이 있을 것 같다. 왜 그것이 서글프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이부자리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가까이 있던 친구. 혹은 여동생과 같은 내 삶의 가까운 여성이 꿈속에 나타나 나와 섹스 혹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펠라티오를 해주기도 하고 섹스를 하기도 하고 손으로 자위를 해주기도 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가 사랑하지 않고 있고 단지 성적 호감만 있는 여성이 꿈속에 나타나 나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뜨면 속옷과 이불이 나의 정액으로 더러워져 있다.
나는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남성들의 이야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의 정재영과 '달콤살벌한 연인'의 박용우가 그런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두 영화에서 보면 두 사람 다 몽정을 경험한다. 나이 30대 중반을 넘긴 사내들도 그렇다. 성인 남자가 몽정으로 말미암아 정액을 배출하고 그 정액이 묻은 속옷과 이불을 빠는 것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닌데 일어난 일이라서 정말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서글픈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자위를 한다. 영어로 마스터베이션. 흔한 말로 딸딸이. 건강한 남성에게 여자친구가 없고 있더라도 아무런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자위를 할 수밖에 없다. 자위를 하지 않으면 정액이 몸속에 쌓이고 그 쌓여가는 정액만큼 성욕도 쌓여간다. 결국, 잠들었을 때 몽정을 하고 남자는 홀로 화장실에서 정액 묻은 팬티를 빨아야 한다. 왠지 모를 굴욕감과 서글픔과 우울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래 그럼 알았다고 그냥 자위하면 되지 않는가 하고 몇몇 여성들은 물을 것 같다. 나는, '남자는 자위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싫든 좋든 자위를 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서 동영상이나 사진이나 글을 읽으면서 자위를 하고 그렇게 정액과 더불어 성욕을 배출해야 한다.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며 더러운 동물이라고 욕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그런 남성들도 있다. 성욕을 배출하기 위해 변태적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여성에게 추행하거나 성적인 폭행을 하는 남자들. 짐승과도 같은 본능에 휩싸여 남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하는 존재. 그런 존재들도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남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최소한 나는 이제껏 그래 왔다. 그리고 덤으로 사랑하는 사람만 내가 가진 성욕을 처리해 주길 바랐다. 응당 그것이 바른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홍등가에 가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다. 지금 나는 혼자이고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곧 멀리 떠날 사내에 불과하다. 돈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잘생긴 사람도 아니다. 건강하고 다소 강한 육체적 힘을 지닌 스물여섯의 청년이 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있었고, 이런 나의 헛소리에 L과 S는 키특 키특 웃었다. 나는 몽정을 하는 것은 싫고, 그렇다고 자위하는 것도 싫고, 하지만 외롭고 쓸쓸하게 차오르는 성욕을 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누구나 OK라는 심정으로 섹스하려고 집을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집을 나와 차분히 길을 걸으면서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고.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한 대화를 떠올렸다. 그 대화는 별것 아닌 대화였다. 인생이란 별거 아니라고. 먹고 자고 일하고 돈 벌고 그러다가 여자랑 섹스하고. 섹스하다가 아이기가 생기고. 아기를 낳고 아기를 키우다가 늙어가고. 늙어서 병들고 죽는다. 누구나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 돈이란 것은 생길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돈에 연연하지 말고 늙으면 못하는 게 많으니까 젊어서 많은 것을 해보라. 또한, 많은 것을 해 보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잊지 마라.
내게 말을 건 것은 S이라고 불리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긴 머리에 웨이브 진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길에서 흔히 보는 흰 셔츠에 검은색의 짧으면서 옆으로 풍성한 느낌이 드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으면서 곧고 날씬한 다리를 가지고 있어 미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방해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일본 소설 아쿠타가와 수상작. 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 책 재밌어요? 왜 여기서 책을 읽어요?"
나는 순간 짜증이 나서 그녀에게 못할 말을 했다. '주체못할 성욕 때문에 섹스가 하고 싶어서 헌팅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바보 짓 같아 여기서 등신처럼 책 읽고 있어. 집을 나왔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도 좀 그렇고 말이야. 책이야 아무 데서나 읽으면 뭐 어때? 괴롭고 힘들어서 술도 마시고 책도 읽고 그러려고.' 그러자 그녀는 내 말에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친구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내게 와서 합석을 요구했다. 그녀가 데리고 온 여자는 L이라는 여자였는데, 뿔테 안경을 쓴 청바지에 흰색의 운동화. 옷깃이 달린 빈폴 반소매 티셔츠에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녀도 못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S에 비하면 수수한 평범한 여자애로 보였다. 하지만, 꾸미면 S 못지않은 미인이 될 것 같은 여자애였다. 그녀는 별말이 없었고, 내 말에 호응하고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은 S라는 여자였다.
"운명이 있는 것은 굉장히 똑똑하고 강한 정신력의 사람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에서 유추하는 거예요.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해 봐요. 어느 누가 자살할 것으로 생각했나요? 정치적인 핍박으로 말미암아서인지, 비리로 말미암아 망가진 명예를 지키려는 것인지는 솔직히 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전 2003년도에 노무현의 취임과 더불어 저는 성인. 즉, 20살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20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거죠. 그래요 다 떠나서 나는 지금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지도 모르잖아. 죽기 전에 나는 많은 것을 하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내 감정에 충실히 살고 싶다는 거지. 그리고 운명이라는 거. 그래. 정해져 있어. 그래서 그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그 사람의 운명이라고 생각해. 모든 것은 운명이라며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그것도 웃기는 거야. 분명한 것은 운명이 모든 것을 주지는 않아. 운명은 흘러갈 뿐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인 거지. 겉보기에 어려운 삶도 그 사람의 생각하기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거고, 아무리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어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여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거든. 운명은 있지만, 그 운명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 정말 성공한 사람은 운명을 극복하고 자기 스스로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사람이 제각각의 운명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실패한 운명 성공한 운명이 어디 있나. 다만, 선택에 따라 행복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가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그놈이랑 헤어져. 질질 짜지 말고 널 더 아껴주는 남자를 만나. 솔직히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하고만 만나야 해. 남자는 자기가 만족해하는 여자를 만나야 하는 거고. 네 선택이야. 바람피운 놈 만나서 슬퍼하다가 용서하고 또 그 새끼 바람 필까 봐 마음 졸이며 살아가던가, 쓰레기 같은 놈 버리고 다른 남자 만나 그 새끼 만났을 때보다 더 행복해 하던가."
"그런데 아저씨. 은근슬쩍 반말한다?"
나의 말에 S가 응수를 했고. L과 나는 폭소를 했다. 나는 두 아가씨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고, 젊고 예쁜 아가씨들을 상대로 야한 이야기도 했다. L은 부끄러워했고, S는 흥미진진해했다. 두 아가씨는 나의 연애사를 궁금해했고 나는 나의 연애를 말해 주었다. 나는 두 아가씨에게도 연애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는데 L은 자기는 그 바람피우는 애인이 자기의 첫사랑이라고 했고, S는 미소로 응수했을 뿐이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고, 이만 집에 가야겠다고 말을 했다. 시계는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고 나는 다음날이 월요일부터 다시 영어 학원에서 공부해야 하는 처지였다. L은 따라서 자기도 집에 가겠다고 했고. S도 따라 길을 나섰다. S는 나에게 L이 택시 타는 곳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래. 라고 답했다. 택시를 탄 L은 S에게 손을 흔들었고 나에게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들어 답했다.
"그냥 나랑 섹스하지 않을래?"
![]() 실존주의적인 처지에서 보면 인간은 무척이나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렇게 인간은 그 자유라는 커다란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마다 선택이라는 의무를 가져야 한다. 손쉽게 예를 들자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것이지 아니면 더 잠에 빠져들 것인지를 선택한다. 잠에 빠져든다면 더 좋은 기분을 가질 수 있겠지만, 너무 늦어 학교나 회사에 지각할 수도 있다. 말단 사원이라면 지각을 하여 회사에서 짤릴 수도 있지만, 사장이라면 지각 따위 좀 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여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물론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대신 그 선택에 따른 책임과 달라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먼저 씻고 올게."
욕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하면서 나의 그곳은 단단해져 있었다. 거울을 보다 쿡쿡 웃음이 나왔다. 예쁜 여자와 하는 섹스에 앞서 나의 몸은 많이 긴장되어 있었다. 왠지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고 살짝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만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짧게나마 샤워를 하고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욕실을 나왔다. 그녀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있었다. 미동도 없는 그 모습에 왠지 나는 그녀가 걱정스러워 졌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왜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한쪽 팔로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보았고 나 역시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키스. 키스가 끝나고 그녀는 내 눈을 피하더니 얼굴을 밑으로 가져가 내 페니스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따뜻한 그녀의 입속이 내 페니스로 느껴졌다. 그녀의 혀와 치아가 느껴졌다. 서툴렀지만 뭔가 노력하는 듯한 느낌. 귀여웠다. 나는 그녀의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긴 머리칼을 배와 허벅지에서 느꼈다. 한참 뒤, 나는 그녀의 입안에서 사정했다. 나는 그녀에게 뱉으라고 했으나 그녀는 눈을 감고 꿀꺽하니 삼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를 안아 따뜻하게 토닥여줬다. 그녀의 숨소리가 약간은 가빠진 듯했고 그녀의 체온이 약간 올라간 듯했다.
다음날 아침.
"아저씨…." S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S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였고, S의 하얀 나신이 아침 햇살에 비추어 하얗게 빛나고만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윽고 502호의 문을 열어 방을 나섰다.
나는 그때의 선택으로, 완전히 다른 나로 태어나 버렸다.
섹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런던 시각 새벽 1시 35분. 지금 옆방에서 한국인 두 남녀가 열심히 서로의 생식기를 맞대며 낑낑 거리고 있다. 그리고 방금 그 광경을 내가 목격했다. 사실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하면... 사실 세르비아전에서 두 한국인 여자를 만났다.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세르비아전에 함께 간 것은 옆방 형 떄문이었다. 그렇게 세르비아전에서 만난 두 한국인 여자 중 한 여자는 런던 근처의 한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이고, 그 여학생은 런던 소재의 어학원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놀려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세르비아전 다음날 형이 그 런던의 어학원에 다니는 여학생과 술을 마시고 오는 것 아닌가. 그때 사실 눈치를 챘다. 아, 두 사람 사귀겠구나. 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냥 그렇겠구나 하고. 보통은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외로운 타국 생활이고, 젊은 남녀이고, 배경은 모던과 고풍이 어루어진 런던. 그리고 토요일인 오늘, 형은 그 여학생과 영화를 보려고 갔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피임 꼭 해라고. 내 나이가 이십대 중반을 넘어섰고, 형도 알거 다 아는 나이인데 그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다. 그런데 형은 무슨 소리냐고 하면서, 그 여자를 집에 데리고 왔고, 자신의 방에서 술을 먹이더니, 열심히 피임도 안하고 허리를 놀리고 있다. 소리를 내면서. 목격은 어떻게 했냐면, 어찌 어찌해서 함께 잠시 술을 마셨는데, 나는 체력도 좋고 정신력도 강한 편이라서인지 여간해서는 술에 잘 취하지를 않는다. 셋 중에서 내가 술이 제일 센 편인데 형은 마시지를 않고, 여자는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인사불성이고... 그래서 형은 여자를 집에 데려다 주고 온다고 하면서 집을 나섰다. 형이 집을 나서는 동안 내가 설겆이를했고, 그 동안 형은 다시금 자신의 방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 옷을 벗기고 섹스를 하던 중이었다. 뭐, 나는 설겆이 한 것 중. 형의 그릇을 형의 방에 놓아 두고 나오려던 참이었고. 그러다 두 남녀가 침대 위에서 벌거벗고 하고 있는 것을 목격. 두 사람 다 우리는 아무사이 아니라고. 성적인 행위는 안하는 사람들이라고 나에게 그랬는데, 이젠 형이나 여자는 할말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하나 두 남녀 모두 벌거 벗은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으니. 그러나 저러나 그 여학생이 나를 제대로 쳐다보질 못할 것 같다. 이 집의 안 좋은 점 하나가 방 문을 잠글 수 없다는 것인데, 내 생각에 두 사람 깊은 관계가 되지는 못하고 그냥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끝날 듯. 오래가게 된다면 글쎄... 형이 그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되는거 아닐까? 사실 많이 그런다. 여기서 만난 남녀가 몇달동안 동거를 많이 한다. 외로움도 극복하고, 돈도 아끼고. 일석 이조라고 할까? 이상하게 보지 말기를. 성인인 남녀가 섹스를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섹스? 하고 싶냐고? 섹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인간인데, 그래서 그들을 이해한다. 기회가 있으면 모든 것을 누려 보아라가 내 신조 아니던가. 나도 섹스하고 싶고, 기회가 있으면 할 것이다. 그런데 런던에서 한국 여자와의 섹스는 좀 아닌 것 같다. 참 이기적이게도 여기서 미리 공부를 오래 한 한국 남성들은 외국여자와 사귀라고 하나 같이 충고를 한다. 그래야 영어 실력이 늘어난다고! 절대로 한국여자를 조심해라고! 한국 여자와 사귀면 외국어를 쓸 기회가 없다고 하더라. 어떤이는 욕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여기서 한국 여자와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결혼을 할 정도의 여자 아니겠는가. 나는 섹스를 아무하고나 하는 남자도 아니고, 아무하고나 하면 나의 전 애인들이 내게 실망을 할 것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것은 나는 정말 독신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 완소 세르비아 소녀. 경기장까지 가는 길을 몰랐는데, 저 세르비아 소녀가 인간 네비게이션이 되어 주었었다. 지난 18일날에 세르비아전을 보러 갔었다. 여태껏 외국에서 국가대표전을 할 때, 그 경기를 보러가는 사람을 보면서 참 부러웠었는데 내가 그런 일을 겪게 되다니, 참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일들을 겪으면 사람은 참 얼떨떨하다. 하긴 내가 런던에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만은... ![]() 세르비아 국기와 대한민국 국기. 간만에 마음에 드는 좋은 사진! 가는 길을 몰라 어리 버리까며 지나가는 영국인들에게 표를 보여주며 길을 물으니 참 친절하게도 가르쳐 준다. 그래서 그런지 힘들지 않게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버스 안에서 얼굴에 세르비아 국기를 그린 소녀를 보고 소녀를 따라 버스에서 내려서 쫄래 쫄래 따라 갔다지.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듯이, 1대 0으로 경기는 졌지만, 그래도 정말 흥미 진진한 경기였다. TV로 보던 것과는 다른 실제 축구장에서 보는 경기. 다른 축구 경기장과는 달리 좀 낡았지만, 말 그대로 축구경기만을 위해 지어진 경기장이라 선수들을 눈 앞에 보듯이 볼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망원렌즈로 선수들을 잡으니 정말 눈 앞에 있는 듯이 보여졌다. ![]() 박지성 선수. 쏴랑해요 박지성♡ ![]() 저는 박지성 선수 안티가 아닙니다. ![]() 차세대 주자 이청용선수 ![]() 등번호 20번. 이동국선수 사진으로 자세히 보니 이동국 선수도 많이 늙으신 듯... 그러고보니 2002 월드컵에 왜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 선수를 대표로 뽑지 않았을까? 나는 그게 참 궁금하다. 그런데 내게 알려주는 사람은 별로 없어. 누구라도 좋아요. 알려주세요. ![]() ![]() 이영표 선수♡ ![]()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는데 선수들 표정이 다들 밝지는 않았다. 아마도 세르비아에게 패배해서 그런것 같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박수와 갈채를 보내며 선수들을 위로했다. 선수들은 정말 잘 싸웠고 최선을 다했다. TV에서 보면 내가 더 잘 할것 같은데 실제 경기장에서 보면 그게 아니다. 지던 이기던간에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뛰어 비오는 듯한 땀을 흘리는 선수들에게는 경외감이 일어난다. 내가 떠오르는 것은 중학교 시절인가? 도쿄에서 일어났던 한일축구전이다. 그때 0대0으로 팽팽하게 맞서다가 후반 종료 십분여를 앞두고인가 우리가 한골을 먹어 버렸다. 도쿄구장의 울트라니혼은 좋아가지고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고, 일본 축구 감독은 주먹을 흔들며 승리를 확신했다지. 그런데 우리가 몇분 뒤에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때 일본관객에 비해 소수에 불과하던 우리 응원단은 좋아서 난리가 났고, 곧바로 다시금 역전골! 그때나는 부산에서 TV로 보고 있었는데, 그때 MBC해설자인가가 후지산이 무너져요라는 명언을 남겼고 나는 좋아서 방방 뛰었었다. 그때의 경기는 일본에게는 잊고 싶은 경기였을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정말 기억에 두고 두고 남을 경기다. 2002월드컵이 내가 고3때 일언난 일인데, 그때 분명 내가 중학교 시절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일본은 패배! 그때 파란물결의 일본 응원단중 일부가 일본 축구선수들에게 힘내라는 듯한 응원을 하는 것을 보았었다. 젊은 일본 여성이었는데 지금쯤 그 아가씨들은 아주머니가 되었을 테지... 아무튼 그들은 비통한 역전패를 당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었다. 나두 마찬가지로 런던에서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졌지만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최선을 다했다면 승패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비오듯이 땀을 흘리는 그들이 아름답다. ![]() 세르비아 전에서 경기 구장을 3분의 1밖에 개방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득 채운 한국의 축구 응원단들. 대체로 늙으신분들은 교포분들 같고, 젊은 사람들은 대다수 유학생이다. 재밌었던 것은 뚱뚱한 교포 아주머니가 12파운드짜리 표를 사 놓고 20파운드 좌석에 앉아 있다가 뒤 늦게 참여한 유학생들과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 요즘 한국 유학생 아가씨들 무섭드라. 교포아주머니가 자리도 못찾겠고 그냥 섞였으니 아무대나 보자는 거였는데 유학생 아가씨들은 돈을 주고 표를 샀으니까 자기에게 권리가 있다면서 따닥 따닥 몰아 세우더니 결국 외국인이랑 함께 자리에서 쫒아내드라. 사실 유학생 아가씨들 말이 맞지만 내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좀 그렇더라 ^^ 그리고 그 아가씨들이 내 옆에 서서 어찌나 응원용 풍선을 내 귀 옆에 대고 두들기는지 그 소리에 내 한쪽 귀가 다 아프더라고...^^ 성질이 뻗쳐서 한마디 하려고 하다가 그냥 그 풍선을 고의인듯 아닌듯 주먹으로 쳐서 손아귀에서 놓치게 해버려더니 안그러시더라고. ![]()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오랜만에 한식당에 가서 한식을 사 먹었다. 그리고 펍에 가서 기네스 맥주를 한잔 했다지. 바로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헀고, 공부도 하고 그러느라고 포스팅을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는 니모와 함께, 맥주를 반주 삼아 레스턴스퀘어에 있는 식당에서 T본 스테이크를 먹었다. 사진기를 들고 가지 않은 것이 참 아쉽다. 참으로 멋진 식사였기 때문이다. 창가에 앉아 창밖의 영국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을 보면서 하는 식사는 훌륭했다. 니모도 내 기준으로는 그닥 나쁘지 않은 외모의 귀여운 아가씨이고. 그런 아가씨랑 마주 앉아 하는 좋은 식사 후에, 커피도 한잔 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어서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너무 돈을 쓰지 않으면, 자기 비하감에 빠지고 자존감이 무너진다. 평소에는 하루에 점심값으로 2파운드만 소비하다가 갑자기 고급음식을 먹으니 니모가 놀라더라. 나는 차근 차근 돈을 소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했더니 니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렇다. 돈이 많든 적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근검절약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근검 절약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기 비하감에 빠지기 십상인데, 그러한 기분이 들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스스로를 위한 문화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절제와도 관련된 일인데, 늘 비싼 외식에 비싼 문화생활을 즐기다가 갑자기 돈이 없으면 사람은 정말 비탄에 빠진다. 그렇게 무너지는 사람들을 나는 숱하게 보아 왔다. 하지만 반면에 평소에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하다가 아주 이따금 스스로를 위한 소비를 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주 건강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양귀비 뺨치는 미인이라도 3박 4일 침대에서 함께 생활하면 무덤덤 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욕망에 관한 것인데, 어떠한 욕망이 본인에게 생기고 그 욕망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있더라도 그 욕망에 푹하니 빠지지 말고 이따금 취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어느 정도를 이루면 이 이상을 요구하게 된다. 뭐 어려운 이야기로 빠질 뻔 했다. 어쨌건 대한민국 선수들 파이팅! ![]() A Wheatfield, with Cypresses. 1889, Vincent van Gogh A Wheatfield, with Cypresses 는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측백나무가 있는 밀밭이다. 누런것이 밀밭. 그리고 저기 하늘 거리는 물풀같은 나무가 측백나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과 동종의 그림은 뉴욕의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고흐가 죽기 1년전, 정신병원에 있으면서 그렸다고 하는 참 유명한 그림이다. 그림속의 사물들은 일그러져 보이는데 어떤이는 그냥 기법이라고 하고, 어떤이는 고흐가 간질병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간질발작이 일어날 때 마다, 사물이 일그러져 보인다고 한다. 고흐는 그때 간질 발작을 일으켰을 때 보여지는 일그러진 풍경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고흐의 해바라기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그림은 해바라기 만큼이나 참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 역시 해바라기처럼 물감을 투텁게 칠해 놓았는데, 가만히 구름을 그린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구름을 그리기란 참 어렵다. 그런데 고흐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생동감있고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뚜렷한 그런 구름을 그려 넣었다. 밀밭과 측백나무 역시도 이채롭다. 바람에 일렁이는 듯한 그런 그림이다. 정지된 그림이면서도 움직이는 듯한 그런 생동감을 고흐는 불어 넣었다. 몇몇 이들은 고흐의 그림에 비하여 너무나 명성이 높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의 일생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환경속에서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린 그가 참 경의롭다. 몇년 전, 명문여대 신입생인 아가씨를 알게 되었었는데, 그 아가씨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인터넷으로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뭐 하러 직접 그림을 보냐고. 뭐, 모니터 속의 작은 그림으로 만족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그림을 직접 보았고,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화가의 붓 터치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 화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반고흐의 위 그림은 보는 것이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을 통해 들어온 반 고흐의 그림은 내 가슴을 참으로 저리게 만들었다. 가슴이 저리는 순간. 당신의 일생동안 몇 번이나 찾아 오겠는가? 따뜻한 느낌과 편안한 느낌. 그리고 약간의 애절한 슬픔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따뜻하고 편안하지만 애절한 슬픔을 나는 위 그림에서 받았다. 반 고흐는 독신이었고, 평생 자신의 그림을 세상으로 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고흐의 주치의는 Gachet라는 박사인데, 그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Gachet박사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며 혹독한 비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혹독한 비평을 하면서도, 돈 없는 고흐의 진료비를 대신하여 그의 그림을 받아주곤 했단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고흐의 그림이 인정받게 되면서 Gachet박사의 후손들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사연을 핑계삼아, 파리의 거리 화가들이 관광객들로 부터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프랑스의 길거리 화가로부터 그림을 받고 돈을 주려고 할때, 화가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유명하지 않지만, 먼 훗날 내가 고흐처럼 유명해 진다면 당신을 그린 이 그림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오. 그러니 넉넉하게 돈을 좀 주시구려.' 위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하하. 군 복무시절, 집에 돌아왔더니 못보던 아버지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위의 사실을 알려주면서 아버지는 내게 자랑을 하셨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액자까지 맞추어서 벽에 걸려 있던 아버지의 초상화 한 구석에는, 프랑스 거리 화가의 이름이 멋들어지게 써져 있었다. 물론 그 그림에 대한 관람평은 하지 않겠다. 만약에 솔직한 관람평을 하면 아버지가 쓰신 돈에 비례하여 참 많이 서운해 하실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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